수면의 이중 역할: 기억을 강화하고 새로운 학습을 준비하는 뇌의 비밀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뇌의 핵심 기능이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한 학습이나 판단, 미래 계획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기억은 단순히 뇌 어딘가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엔그램 세포라 불리는 특수 뉴런 집단이 물리적으로 경험을 부호화하면서 형성된다. 과거 수십 년간 뇌과학자들은 이 엔그램 세포의 존재와 역할을 규명해왔고, 특히 ‘수면’이 기억 형성과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2025년 4월, 일본 도야마 대학의 이노쿠치 가오루 교수팀은 학습과 기억에 대한 수면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되며, 수면이 단지 과거 기억을 공고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학습을 위한 뇌의 준비 작업도 동시에 수행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출처: Nature Communications, 2025년 4월 28일)

연구진은 생쥐를 대상으로 한 행동 실험과 첨단 신경 영상 기술을 결합하여 수면이 과거 경험을 엔그램 세포에 통합하고, 미래 경험을 저장할 엔그램 세포를 준비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밝혀냈다. 출처: 일본 도야마 대학교 이노쿠치 가오루

연구팀은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생칼슘 이미징과 엔그램 세포 표지법을 활용해 학습 전후와 수면 중 뇌 활동을 정밀 추적했다. 그 결과, 학습 후 수면 동안 기존 엔그램 세포의 재활성화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전통적으로 알려진 기억 공고화 과정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연구진은 ‘엔그램-투-비(engram-to-be) 세포’라 명명한 또 다른 뉴런 집단이 점차 동기화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 세포들은 이후 새로운 학습이 주어졌을 때 기억을 형성하는 데 관여했다.

이노쿠치 교수는 “기존 기억과 향후 기억을 담당할 세포들이 수면 중에 함께 활성화되며 뇌 속에서 새로운 연결망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시냅스 감소와 스케일링이라는 신경 연결 조절 기전을 포함한 해마 기반의 인공 신경망 모델도 개발했다. 이 모델을 통해 수면 중 이러한 기전이 억제되면 미래 학습을 위한 뇌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즉, 뇌는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기 위해 수면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새로운 정보를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예행연습’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면의 질과 구조는 단지 기억력 향상뿐 아니라, 다음날의 학습 능력 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면은 이제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뇌는 수면을 통해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는 학습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잠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교육 환경, 업무 성과 향상, 노화에 따른 인지 저하 예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면의 역할을 재조명해야 할 시점이다.

📌숙면을 위한 과학적 팁 5가지

취침 1~2시간 전 온수 샤워
체온이 상승했다가 내려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수면 유도에 도움을 줌.

매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생체리듬(서카디안 리듬)의 규칙성을 유지해 깊은 수면을 유도함.

카페인은 최소 6시간 전 끊기
카페인은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숙면을 방해할 수 있음.

전자기기 사용 줄이기
스마트폰, 태블릿 등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므로 취침 전 1시간은 화면을 피하는 것이 좋음.

잠들기 전 명상이나 심호흡
과도한 긴장 상태를 완화시키고,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켜 자연스럽게 수면 상태로 이끎.


이처럼 수면은 학습과 기억의 관점에서 매우 전략적인 뇌 활동의 시간이다. 특히 학생이나 지식노동자처럼 지속적인 학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숙면은 ‘공부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수면 시간을 줄이기보다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